20:28 45년세월의 갈피속에 새겨진 충성과 헌신의 값높은 자욱 | |
주체110(2021)년 5월 15일 토요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봉화화학공장 직장장 김영선동무에 대한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사회와 집단의 존경속에서 살기를 바란다.하지만 그것은 바라거나 요구한다고 하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사회와 집단 나아가서 조국과 인민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 시대와 혁명앞에 무엇을 해놓았으며 어떤 자욱을 남겼는가에 따라 보람차고 긍지높은 생으로 빛날수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지난 45년세월 당이 맡겨준 영예로운 초소를 불같은 충성과 열정, 뜨거운 사랑과 정으로 굳건히 지켜온 봉화화학공장 직장장 김영선동무, 우리는 그가 걸어온 인생길을 통하여 만사람이 공감하고 찬양하는 값높은 삶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심장깊이 새겨보게 된다.
일편단심으로 걷는 길 리상도 컸고 꿈도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중학교졸업을 앞두고있던 김영선동무의 가슴은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올랐다.배움의 전당에서 과학탐구의 나래를 한껏 펼친 름름한 대학생, 과학기술로 조국을 받드는 어엿한 과학자… 그러던 어느날 그는
전쟁로병이며 오랜 당일군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새겨들을수록 김영선동무는 가슴속에 무엇인가 크고도 묵직한것이 자리잡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새 세대로서, 피끓는 청춘으로서 내가 해야 할바는 무엇인가.) 그는 결심했다.당이 부르는 보람찬 초소에서 청춘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치리라! 이렇게 되여 김영선동무는 인민경제발전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게 될 화학공업기지건설장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게 되였다. 보람찬 로동생활을 시작하는 날 들끓는 건설장의 한복판에 선 그의 가슴은 저도모르게 뻐근해졌다.난생처음 보는 우람찬 강철구조물이며 시작과 끝을 모르게 뻗어간 무수한 도관들… 그 모든것이 무엇을 위한것이고 어디에 필요한것인지는 다 알수 없었지만 흥미있고 신묘한 화학의 세계를 남먼저 파헤칠 야심만만한 포부와 결심이 그의 가슴속에 바위처럼 들어앉았다. 공장을 건설하던 나날은 물론 완공된 공장의 첫 세대로서 당당한 기대공이 되였을 때에도 김영선동무는 하루를 분과 초로 쪼개며 줄달음쳐살았다.신입기대공들을 위해 조직한 실습기간 자기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노력한 결과 어떤 어려운 설비운영도 능히 맡아할수 있는 기능을 남먼저 소유하게 되였고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되여 공부하는 나날에도 휴식참이나 잠자리에서조차 늘 참고서속에 파묻혀살다싶이 하여 복잡한 화학반응공정을 손금보듯 파악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것이 해결된것은 아니였다.아직 로동계급의 첫발을 뗀데 불과한 그가 기술기능에 앞서 심장속깊이 간직해야 하는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언제인가 김영선동무는 무슨 일인가에 열중하고있는 나이많은 기대공을 띄여보게 되였다.가까이 다가가보니 방금 자기가 돌아본 설비를 다시 조작하고있는것이였다.설비운영에서는 막힘이 없다고 자부하고있던터인지라 그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한동안 김영선동무를 유심히 바라보던 오랜 기능공의 입가에 미소가 비꼈다.
그날 기대공아바이는 김영선동무에게 그로부터 얼마후 당앞에 다진 맹세를 지켜 뜻밖의 정황에서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설비를 구원한 아바이의 영웅적인 모습을 통하여 김영선동무는 심장으로 깨달았다.그 어떤 기술이나 기능에 앞서 언제나 우리는 여기에 그 모든 과정과 이야기를 다 담지는 못한다.그러나 위급한 순간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여 공장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는 일터의 숨결을 지키고 20살의 애젊은 나이에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사실앞에서, 지난 기간 우리의 힘과 기술로 우리 식의 생산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어느날 공장의 어느 한 회의실에서는 긴장한 침묵이 흐르고있었다.생산과정에 나오는 원료의 부산물로 여러가지 쓸모있는 화학제품을 만들기 위한 공정도입문제를 토의하는 자리였다.열띤 토론끝에 깃든 정숙을 깨치며 한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김영선동무였다.
현존설비를 우리 식으로 개조하면 지금 있는 촉매제로도 얼마든지 화학제품을 생산할수 있다는 그의 제기에 회의참가자들 대부분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지금껏 들어본적도 있어본적도 없는 대담한 시도였던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 알수 없었다.그 대담성의 밑바탕에 놓인 그후 김영선동무와 직장의 기술자, 기능공들은 련관단위의 과학자들과 지혜를 합쳐 여러가지 질좋은 화학제품을 꽝꽝 생산할수 있는 공정을 우리 식으로 훌륭히 확립하여 우리는 45년세월의 갈피속에 새겨진 김영선동무의 삶의 자욱을 놓고 다시금 새겨안게 된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한개 직장을 책임진 일군으로서 김영선동무가 지닌 인간미에 대해 우리는 굳이 삶의 향기라고 말하고싶다.인간중에서도 참인간, 대중이 진심으로 따르고 지난 기간 봉화화학공장 2직장은 3중3대혁명붉은기직장, 3중26호모범기대영예상직장, 모범기술혁신단위, 모범준법단위 등 수많은 영예칭호를 쟁취하였다. 여기에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서로 돕고 이끌면서 전진해나아가는 직장의 단합된 모습과 함께 자기 단위 종업원들을 친혈육으로 여기고 그들의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고있는 김영선동무의 고결한 풍모가 그대로 비껴있다. 지금으로부터 근 20년전 김영선동무가 직장장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때였다. 직장의 기술관리를 맡아보던 책임기사의 눈으로가 아니라 단위의 모든 사업을 책임진 직장장의 견지에서 볼 때 그의 마음을 무겁게 한것은 비단 생산의 정상화문제만이 아니였다.일부 종업원들이 일터에 대한 애착심이 없이 생활하고있었던것이다. 김영선동무는 종업원들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의 마음의 문을 먼저 열고 생활상애로를 풀어주는것으로부터 사업을 시작했다.그러나 생산을 지휘하면서 백수십명이나 되는 종업원들의 생활형편을 손금보듯 헤아린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생각끝에 그는 수첩에 종업원들의 사업과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빠짐없이 적어넣고 풀어주기로 하였다. 《우리 가정수첩》, 봉사단위에서나 볼수 있는 수첩의 류다른 이름이 말해주는것처럼 김영선동무에게 있어서 직장의 종업원들은 피와 살을 나눈 한식솔이나 마찬가지였다.그는 여러 계기를 통하여 알게 된 종업원들의 생활상문제를 수첩에 적어넣고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풀어주는것을 사업과 생활의 철칙으로 삼았다. 그 과정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언제인가 직장의 한 종업원은 늦은저녁무렵 자기 집뒤의 빈땅을 자로 재고있는 김영선동무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의아함을 감추지 못하는 종업원에게 직장장은 말했다. 이제야 집문제를 대책하기로 한데 대해 정말 미안하다고. 순간 종업원은 며칠전에 작업반성원들앞에서 자식들이 커가는데 집이 좁아 불편하다고 했던 말을 상기하였다.그의 가슴에 뜨거운것이 그득히 차올랐다. 사실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 말이였는데 직장장이 직접 찾아와 집지을 자리까지 확정할줄은 미처 몰랐던것이다.다음날부터 건설자재들이 마당가에 쌓이고 며칠후에는 더 크고 환해진 집이 덩실하게 일떠섰다. 이렇듯 집단과 동지들을 위해 뼈심을 들이고 진정을 다하는 속에 김영선동무가 늘 주머니에 넣고다니다싶이 하는 《우리 가정수첩》은 여러번이나 바뀌였다. 그 나날 종업원들의 결혼상을 성의껏 차려주고 공로자들의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해주며 몸이 불편한 종업원들을 위해 밤잠을 미뤄가며 아글타글 애쓰는 일군, 어느 종업원의 자식이 대학에 입학하거나 누구의 아들이 군대에 입대하는 날까지 속속들이 헤아리며 늘 왼심을 쓰는 직장장을 사람들은 《우리》라는 부름으로 정답게 불렀다. 직장장부터 집단을 위해 헌신하니 종업원들속에서도 아름다운 소행이 적극 발휘되였다. 그들은 작업반마다 《좋은일하기일지》를 스스로 마련해놓고 동지들과 일터를 위한 좋은 일을 한가지씩이라도 찾아하기 위해 애써 노력했다.일지에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매일이다싶이 새겨졌다. 복도의 전등갓을 깨끗이 닦아놓는다든가 휴계실에 걸려있는 벽시계의 전지약을 새로 갈아끼운다든가 또 어느 동무의 집수리를 도와준다든가 하는 등 해놓은 일은 비록 사소하고 평범한것이여도 사람들은 그 과정을 통해 집단과 동지의 귀중함을 더 깊이 새겨안을수 있었다. 몇해전 직장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불치의 병으로 앓고있던 한 오랜 기능공과 영결하게 되였다.그날 기능공의 안해가 손수건으로 정히 싼것을 직장일군들앞에 내놓았다.뜻밖에도 생산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정밀측정기구였다. 환자가 동지들의 성의가 깃든 물자를 자기의 병치료에 쓰지 않고 모두 모아두었다가 측정기구를 마련하였다는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의 가슴이 어찌 뜨겁게 젖어들지 않을수 있었으랴. 오늘 봉화화학공장 2직장 종업원들은 거의 모두가 기사, 기수자격을 갖춘 고급기능공들이다.여기에도 종업원들을 위해 바치는 김영선동무의 사심없는 진정이 뜨겁게 스며있다. 제품을 생산하는것은 기계설비이지만 그 설비를 다루는것은 기능공이다. 김영선동무는 직장장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이러한 지론을 철칙으로 삼고 종업원 한명한명을 품들여 키웠다. 직장에서는 한해를 마감짓는 12월이면 모든 종업원들이 누구나 다음해에 실현할 기술혁신안을 나름대로 세우군 한다.결국 백수십가지의 기술혁신안이 단번에 쏟아져나오는셈이다. 하루일이 끝난 뒤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그것을 들여다볼 때면 김영선동무의 눈가에는 저도모르게 미소가 비끼군 한다.비록 평범하고 소박해보여도 거기에는 직장장이나 책임기사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엉뚱한 착상과 함께 자기 기대, 자기 일터에 대한 소중한 애착심이 비껴있기때문이다. 이렇듯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집단의 단합된 힘으로 뚫고나가는 나날 봉화화학공장 2직장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자기의 일터가 제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집단적혁신의 불길높이 인민경제계획을 넘쳐 수행하는것은 물론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공장의 앞장에 선 전투력있는 집단으로 자랑떨치게 되였다. * * 오늘의 시대는 우리 일군들이 당과 조국, 인민의 크나큰 믿음속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앙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닌 김영선동무는 시대의 이 요구를 심장에 새기고 오늘도 나라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길에 창조와 헌신의 구슬땀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남호 특파기자 김명훈 | |
Category: 조선어 | Views: 341 | | |